
스포일러: 없음
2022년 개봉한 『브로커』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만든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는 2022년 6월 8일에 개봉했습니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두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되는 여정
이야기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의 뜻밖의 여정으로 출발합니다. 베이비박스는 사정이 있는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게 마련된 시설입니다. 영화는 이 공간을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곳을 거쳐 가는 사람들의 사정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그래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서둘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흑백이 선명하게 나뉘는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으며 그러데이션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영화의 태도를 그대로 설명합니다. 소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도 감독은 의식하고 있었고, 모든 관객이 같은 생각을 하도록 그리지 않은 것이 의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동안 인물을 단정하기보다 각자의 처지를 헤아려 보게 됩니다. 도입부가 조용해서 처음에는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느린 호흡이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쌓아 줍니다. 판단을 유보한 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영화는 사건의 해결보다 사건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오래 비춥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단순해 보여도 보는 동안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입니다. 가볍게 시작하는 분위기와 무거운 질문이 한 장면 안에서 만나는 점도 특징입니다. 감상 후에 여운이 남는 이유입니다. 소재가 무겁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의외로 담담합니다. 그 담담함 덕분에 감정이 과장되지 않고 오래 남습니다.
송강호와 배우들이 만든 호흡
배우들의 호흡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설득력입니다. 송강호는 이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한국 남자 배우로는 처음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외에도 에큐메니컬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강동원, 이지은, 이주영, 배두나가 같은 이야기 안에서 서로 다른 온도의 연기를 보여 줍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지은이 출연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연기에 반해 캐스팅했고, 그가 가수 아이유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지은에게는 이 작품이 상업 영화 데뷔작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감독은 강동원이 아역 배우 임승수와 촬영장 밖에서도 어울려 주며 관계를 만들어 준 점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런 현장의 분위기가 화면에도 묻어나,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어색하게 가까워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송강호의 수상은 감독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연기가 앞서 나서기보다 서로의 곁을 지키는 방식이어서 장면마다 균형이 잘 맞습니다. 한국 배우의 연기를 일본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조합입니다. 언어가 다르지만 인물의 감정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배우들이 감독의 방식에 맞춰 목소리를 낮춘 덕분에 대사가 과하지 않습니다. 앙상블을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 만합니다. 특히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가 맺는 거리감이 자연스러워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장의 신뢰가 화면에 옮겨 온 결과로 보입니다.
고레에다가 그린 가족의 경계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에도 가족을 피로 정의하지 않고 함께하는 시간으로 다시 묻습니다. 감독의 영화에서 식탁과 이동 장면이 자주 쓰이듯, 이 작품에서도 인물들이 함께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게 이어집니다. 그 시간 동안 처음에는 이익으로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는 거창한 사건 대신 작은 선택으로 관계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큰 반전이 없어도 끝까지 시선을 붙들어 둡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감독이 오래 다뤄 온 주제입니다. 한국의 배우와 장소를 만나 그 질문이 새로운 얼굴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는 정답을 내놓기보다 보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겹쳐 보게 하는 쪽을 택합니다. 보고 난 뒤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독의 이전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도 이 영화 한 편으로 감독의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물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지 않지만, 함께 움직이는 시간이 쌓이면서 관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이 변화는 대사로 설명되지 않고 표정과 거리감으로 전해집니다. 따뜻함과 씁쓸함이 번갈아 오는 구성이 감독의 장점입니다. 여정이라는 소개 문구처럼 인물들이 함께 길을 나서는 구도가 이야기를 이끕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달라지는 표정이 변화의 증거가 됩니다.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감정의 결이 다릅니다.
마무리
『브로커』는 베이비박스라는 무거운 소재를 판단 대신 이해의 눈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조용한 영화를 좋아한다면 시간이 넉넉한 날에 천천히 감상하고, 보고 난 뒤 가족과 느낌을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