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없음
2024년에 개봉한 『위키드』는 존 추 감독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전, 두 마녀가 처음 만나는 시기를 다룹니다. 한국에서는 2024년 11월 20일 전 세계 최초로 극장에 걸렸습니다.
뮤지컬 영화로서 선택한 두 편 구성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작을 두 편으로 나눠 이야기에 여유를 준 점입니다. 러닝타임은 2시간 40분이며, 1부는 한 번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무대에 없던 엘파바의 어린 시절이 더해져 인물의 외로움이 노래 이전에 설명됩니다. 영화는 서쪽 마녀의 죽음을 기뻐하는 오즈 시민들의 축제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갑니다. 익숙한 틀이지만 결말의 분위기를 먼저 보여 주기 때문에 이후 장면이 다르게 읽힙니다. 한국 극장가의 반응도 이 구성을 받쳐 주었습니다. 개봉 후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고, 11월 25일 기준 누적 관객은 70만 명을 넘었습니다. 북미를 제외한 시장 가운데 오프닝 성적이 세 번째로 높았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뮤지컬 장르가 낯선 관객에게는 긴 상영시간이 부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흐름이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어 노래 중심의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도 따라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1부가 끝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멈추는 점은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부로 이어질 기대를 남기는 방식으로도 읽힙니다. 후속편은 2025년 11월 개봉으로 발표되었습니다. 1부를 먼저 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선택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영화 전체가 노래와 대사를 오가는 구조여서 가사를 따라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자막과 더빙 중 취향에 맞는 쪽을 고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엘파바와 글린다, 우정이 움직이는 방식
두 주인공의 우정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입니다. 신시아 에리보가 초록 피부의 엘파바를, 아리아나 그란데가 밝고 인기 많은 글린다를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쉬즈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가 되고, 처음에는 서로를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이 어색한 출발이 관계의 변화를 더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에리보는 움츠린 자세와 단단한 목소리로 엘파바의 방어적인 태도를 표현합니다. 그란데는 과장된 몸짓 뒤에 불안을 숨긴 글린다를 코미디 감각으로 풀어냅니다. 우정이 깊어지는 계기도 거창한 사건보다 작은 배려에서 시작되어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아는 관객이라면 두 사람의 앞날을 알기에 장면마다 아쉬움이 남습니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두 사람의 대비가 이야기의 길잡이가 됩니다. 노래가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관계의 온도를 전하는 방식이어서, 대사를 따로 곱씹지 않아도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약점을 알아채는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비웃음으로 시작한 관계가 이해로 바뀌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정 영화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보면 어느 인물에 더 마음이 가는지 이야기하기 좋습니다. 노래 가사에 담긴 속마음이 장면의 감정을 한 번 더 확인해 줍니다. 말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음악이 대신 전하는 셈입니다.
오즈를 세운 의상과 미술의 힘
이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는 아카데미가 인정한 부분입니다. 『위키드』는 제97회 아카데미에서 미술상과 의상상을 받았습니다. 미술상은 네이선 크롤리와 리 샌들스가, 의상상은 폴 테즈웰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후반부 에메랄드 시티 장면에서는 고전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는 색감이 두드러집니다. 쉬즈대학의 건물과 기숙사 같은 공간도 세트의 질감이 살아 있어 배우들의 움직임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의상은 인물의 성격을 색으로 구분해 줍니다. 엘파바는 어두운 계열로, 글린다는 밝은 계열로 보여 두 사람이 한 화면에 설 때 대비가 분명해집니다. 노래와 안무가 많은 영화에서는 화면이 복잡해지기 쉽지만, 색의 역할을 나눈 덕분에 시선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극장의 큰 화면으로 볼 때 이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집에서 보더라도 인물이 입은 옷의 색과 배경의 색을 비교하며 보면 감독이 무엇을 강조했는지 짚기 쉽습니다. 무대 뮤지컬이 한 장소에서 장면을 바꾸는 방식이라면, 영화는 공간을 실제로 지어 보여 주는 쪽을 택했습니다. 관객은 배경을 상상하는 대신 눈으로 확인합니다. 이 차이가 영화로 다시 만든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무대를 본 적이 있는 관객에게도 새로운 감상 포인트가 됩니다. 화려한 장면이 많아도 인물의 얼굴이 가려지지 않는 점이 좋습니다. 배경이 주인공을 압도하지 않고 받쳐 주는 구성입니다.
마무리
『위키드』는 우정 이야기와 오즈의 미술이 만나 뮤지컬 영화의 즐거움을 충실히 보여 줍니다. 한 번에 160분이 부담스럽다면 주말 저녁에 시간을 비워 두고 큰 화면으로 먼저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