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없음 2025년 9월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도끼》를 한국으로 옮긴 영화입니다. 직장을 잃은 가장이 다시 일자리를 찾는 과정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냅니다. 결말과 핵심 사건은 적지 않았습니다.
해고라는 현실에서 출발한 이야기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해고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인공 만수는 이병헌이 연기하는 가장으로, 일자리를 잃고 가족의 생활을 지키려 애씁니다. 아내 미리 역은 손예진이 맡았습니다. 원작 《도끼》는 1997년에 나온 소설로, 2005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프랑스에서 한 차례 영화화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코스타 가브라스에게 헌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설정은 해외 소설에서 가져왔지만 한국의 직장 풍경과 자연스럽게 맞물립니다. 생활비와 집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압박이 장면마다 깔려 있습니다. 해고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을 영화는 놓치지 않습니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기다리는 구직의 풍경도 구체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웃음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어딘가 서늘함을 느낍니다. 경제적 불안을 다룬 영화이지만 설교하지 않고 인물의 생활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합니다. 가장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과정이 대사보다 표정과 행동으로 전달됩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허세와 불안이 한 얼굴에 겹치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가족의 일상이 평온하게 그려질수록 곧 닥칠 위기의 무게가 커집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하루가 얼마나 길고 어색한지도 놓치지 않습니다. 이 현실감이 뒤에 이어질 비틀린 이야기에 설득력을 줍니다. 오래 한 직장에서 정체성을 쌓은 사람일수록 공감이 클 이야기입니다.
블랙코미디로 비튼 가장의 선택
이 영화의 독창성은 절박함을 웃음으로 비튼 데 있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울리지 않고 어긋난 유머로 견디게 합니다. 인물이 내리는 선택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런데도 그 논리를 따라가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감정이 생깁니다. 이 지점에서 제목의 의미가 비로소 무겁게 다가옵니다. 박찬욱 감독은 도덕적 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웃음은 잔혹한 장면의 긴장을 풀어 주는 동시에 불편함을 키우는 장치로 쓰입니다. 같은 장면이 어떤 관객에게는 코미디로, 어떤 관객에게는 공포로 읽힙니다. 일상의 사물과 공간이 사건의 도구가 되는 연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영화는 가장의 책임감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끈질기게 파고듭니다. 이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아 관람 후 대화가 길어집니다. 사건의 세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어두운 소재인데도 웃고 나오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웃음의 방향이 인물이 아니라 상황을 향하기 때문에 조롱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블랙코미디의 핵심은 웃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일인데, 이 영화는 그 거리를 정교하게 조절합니다. 그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웃음이 멈추고 정적이 찾아옵니다. 관객은 웃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감정의 널뛰기가 바로 박찬욱식 유머의 매력입니다. 한 장면 안에서 웃음과 긴장이 교대로 찾아옵니다.
박찬욱 연출과 배우 앙상블
박찬욱 감독의 정교한 연출과 배우들의 합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받칩니다. 영화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습니다. 한국 영화가 이 부문에 오른 것은 2012년 피에타 이후 13년 만이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이병헌과 손예진 외에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유연석이 출연합니다. 배우마다 짧은 등장에도 인물의 직업과 처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카메라는 인물의 표정과 손동작을 가까이서 잡아 심리를 읽게 합니다. 화면 구도와 색 사용이 정돈되어 있어 감독의 계산이 눈에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2025년 9월 24일에 개봉해 13일 만에 200만 명을 넘겼습니다. 2026년 2월 말 기준 누적 관객은 약 294만 명으로 집계됩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98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골든 글로브에서는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이병헌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해외 평단의 반응도 좋아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7%를 기록했습니다. 상영 시간 내내 장면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점이 호평의 이유로 꼽힙니다. 가족 장면의 따뜻함과 사건 장면의 냉기가 한 영화 안에서 공존합니다. 극장에서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시길 권합니다. 큰 화면일수록 인물의 시선 처리가 더 잘 읽힙니다.
마무리
해고라는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비틀어 박찬욱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합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웃음 뒤에 남는 질문을 함께 나눌 사람과 같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