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일부 포함. 2022년 7월 27일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은 김한민 감독이 <명량>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이순신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같은 인물을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영화가 어떻게 전작과 구분되는지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박해일 이순신은 말보다 판단으로 움직입니다
이 영화의 이순신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이순신은 화를 거의 내지 않고 말수도 적습니다. 감정은 긴 대사가 아니라 짧은 한마디와 시선의 멈춤으로 전달됩니다. 전작에서 최민식이 보여 준 이순신이 고독과 분노로 버티는 장수였다면, 이번 이순신은 계산하고 기다리는 지휘관입니다. 시대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차이입니다. 영화는 1592년 한산도 대첩을 다루는데, 이는 명량 해전보다 5년 앞선 시점입니다. 아직 젊고 전세가 완전히 기울지 않은 때라 인물의 결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편 와키자카를 연기한 변요한이 그 대비를 완성합니다. 와키자카는 공격적이고 조급하며 자신감이 넘칩니다. 두 지휘관이 서로의 수를 읽으려는 과정이 전반부의 중심입니다. 저는 두 사람이 직접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의식하는 구성에서 긴장을 가장 크게 느꼈습니다. 변요한은 이 역할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자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적장이 조연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구도를 설명합니다. 안성기, 손현, 김향기, 김성규 같은 배우들이 양쪽 진영의 인물을 나눠 맡아 전쟁의 단면을 보여 줍니다. 특히 손현이 연기한 원균은 이순신과 다른 판단을 내리는 인물로, 지휘부 안의 갈등을 만드는 축입니다. 인물이 많지만 조선과 일본 두 진영만 구분하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해전 장면은 후반에 몰아서 옵니다
이 영화의 구조는 긴 준비와 짧고 강한 폭발입니다. 130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본격적인 해전은 후반부에 들어가야 시작됩니다. 전반부는 정보전과 전략 회의, 거북선의 개조 과정에 쓰입니다. 바로 전투를 기대하신 분이라면 전반부가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신 준비 과정을 따라온 관객에게는 해전의 한 수 한 수가 의미를 갖습니다. 학익진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거북선이 왜 등장 시점을 늦추는지가 전반부에 깔린 설명 덕분에 읽힙니다. 거북선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입니다. 전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거북선이 이번에는 구조와 약점까지 다뤄지며 이야기의 한 축이 됩니다. 해상 장면은 실제 바다에서 찍지 않았습니다. 여주의 오픈 스튜디오와 강릉의 스케이트장에서 촬영한 뒤 컴퓨터그래픽으로 바다를 입혔습니다. 그런데도 배가 부딪히고 파도가 갑판을 넘는 장면의 무게감이 살아 있습니다. 물 위에서 찍었다면 통제가 어려웠을 카메라 움직임이 가능해진 결과입니다. 전투의 시점은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을 번갈아 오갑니다. 어느 쪽이 지금 유리한지를 화면이 계속 알려 주기 때문에 큰 소리와 폭발 속에서도 상황이 정리됩니다. 이런 방향 감각 덕분에 해전이 길어도 피로하지 않습니다. 12세 이상 관람가라 전투 장면의 수위도 가족 관람이 가능한 수준에 맞춰져 있습니다. 소리가 큰 장면이 이어지니 극장이라면 좌석을 중앙 쪽으로 잡는 편이 좋습니다.
명량 비교로 보는 변화
두 영화를 숫자로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명량>은 1,761만 명으로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이고, <한산: 용의 출현>은 약 726만 명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관객 수만 보면 절반 이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과 다른 목표를 세운 작품입니다. 전작이 한 사람의 영웅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전투 자체와 전략을 보여 주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진폭은 줄고 정보의 밀도는 늘었습니다. 두 영화를 함께 보신 분이라면 같은 감독이 8년 사이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켰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에 두 작품을 간단히 비교했습니다.
| 배경 | 1597년 명량 해전 | 1592년 한산도 대첩 |
| 이순신 | 최민식 | 박해일 |
| 관객 수 | 약 1,761만 명 | 약 726만 명 |
| 중심 | 장수 한 사람의 감정 | 전략과 전투의 설계 |
흥행 외에 평가도 뒤따랐습니다. 부일영화상 최우수감독상과 미술상, 대종상 의상상, 황금촬영상 촬영상 금상 등 기술 부문 수상이 많았습니다. 이 수상 목록이 영화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배우 한 명의 열연보다 설계와 만듦새로 평가받은 작품입니다. 제작 자체는 2020년에 이뤄졌고 개봉은 2년 뒤였으니, 극장 상황이 달랐다면 관객 수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감독이 왜 전투를 이렇게 그렸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마무리
<한산: 용의 출현>은 영웅의 감정 대신 전략과 설계로 전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명량>을 먼저 본 뒤 이어서 보시면서 두 이순신의 차이를 직접 비교해 보세요.